2020년, 세계 최대 규모의 투자목적 지주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를 이끄는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일본의 5대 종합상사에 대한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정적 수익을 노린 움직임을 넘어,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 흐름 속에서 종합상사의 역할과 가능성을 재조명한 결정이었습니다.
버핏의 이 선택은 21세기 투자 전략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목차
종합상사의 역사와 역할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동북아시아가 산업화를 이루는 시기 동안 종합상사는 중요한 경제적 허브 역할을 해왔습니다. 제조업체 대신 해외 계약을 따내고, 수출입 중개, 물류 및 통관, 시장 정보 수집 등을 전담하며 국가 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했습니다. 이들은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 불리며,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인터넷과 이커머스의 급속한 발전으로 제조업체들이 직접 해외 법인을 설립하고 자사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종합상사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들을 시대에 뒤처진 중개자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와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며 전 세계 경제를 재편했습니다.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의 급등, 미중 무역갈등, 물류 대란 등으로 인해 기업들은 다시 한번 공급망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고, 이를 기획하고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종합상사들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복잡한 공급망을 조정하고 안정적인 자원 확보를 위한 중개자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종합상사 고유의 기능이 새롭게 부각된 것입니다.
종합상사의 새로운 기회
실제로 많은 종합상사들이 새로운 산업과 미래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변화에 발맞추고 있습니다.
-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리튬 광산 투자와 니켈 확보에 집중하고 있으며,
- 삼성물산은 수소 운송 인프라에 투자하고,
- LX인터내셔널(구 LG상사)은 배터리 재활용 및 전기차 핵심 금속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종합상사인 미쓰비시상사, 스미토모상사 등도 전력, 에너지, 자원 분야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그 존재감을 다시금 과시하고 있습니다.
워렌 버핏의 투자 결정과 그 의미
워렌 버핏은 이러한 흐름을 누구보다 먼저 감지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관세 정책과 세계 무역 질서의 혼란 속에서, 그는 종합상사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겼습니다. 글로벌 무역이 불안정할수록, 신뢰할 수 있는 중개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또한 종합상사는 대부분 엔화 기반의 자산과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어, 미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차익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버핏이 언급한 "환율 헤지 없이 투자해도 매력적인 구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결국 그의 투자는 공급망이라는 전 지구적 시스템의 중요성과, 이를 조율할 수 있는 기업의 전략적 가치를 꿰뚫는 통찰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결론: 새로운 시대의 투자 전략
워렌 버핏의 일본 종합상사에 대한 투자는 과거의 유산으로 여겨지던 산업 구조가 새로운 시대의 요구 속에서 재평가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기업의 현재 실적이 아닌, 변화의 흐름 속에서 미래의 역할과 가능성을 읽어내는 그의 투자 전략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21세기의 투자는 단기 수익이 아닌, 지속 가능성과 시스템적 통찰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을 버핏은 또 한 번 증명했습니다. 종합상사의 부활은 곧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기회를 잡는 자에게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릴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